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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지식이되는 순간

"게으름"이라는 녀석과 싸워 이기려면?

by 동그라미네 동그라미네 2020. 12. 18.

"너는~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게으르냐?!!"

라고 우리 엄마는 어렸을 때 혼내셨다.

나는 학창시절 왜 그리도 게을렀을까?

씻기도 귀찮고, 공부하기도 귀찮고,

일찍 일어나기도 귀찮고, 

부모님 일도와 드리기도 귀찮고....

귀찮은 것 투성이.....

난 누굴 닮았던 것일까?

지금 나는 그렇게 게으르지 않다..

어른이 되면서 좀 더 할일을 하고,

그 일을 위해서 준비하고,

정리하고, 움직인다.

사람은 본래부터가 게으르다.

편한 걸 찾고, 덜 움직이길 원하는....

그것을 깨부시고, 부지런해지는 습관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자극을 받고, 변해가는 것 아닐까?

이 게으름을 이기는 습관,

과연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게으름에서 벗어나 좀 더 부지런한 삶을 살려면

삶의 지향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내일 무엇을 할 것인지,

올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라는 뜻이 아니다.

긴 안목으로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라는 말이다.

그 밑 그림은 자신의 성격, 재능, 강점을 물감 삼아

열정의 붓으로 가슴이라는 캔버스에 그려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개성이 물씬 배어나는,

어디에도 없는 밑그림이 나와야 한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지향성을 잃지 않도록 늘 삶을 점검하고

변화의 마음을 리마인드 remind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기점검의 질'을 높여야 한다.

그래서 이제 그 실행을 위해 이야기해보자.

그 전에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드리고 싶다.

사실 게으름에서 탈출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는데,

그런 실천지침들은 게으른 사람들이 따라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다 따라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았을 때

마음이 머무는 방법을 시도해 볼 것을 권한다.

이를 어떻게 자신의 문제에 접목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길 바란다.

더불어 그 고민을 어떻게 작은 실천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스스로의 다짐과 계획을 기록하길 당부드린다.

그 시작을 위해 나는 중요한 한가지를 던져본다.

 

 

< 게으름에 대해 자각하라! >

게으름의 문제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원칙은

'내게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잘못도 합리화시켜버리는 능력이 있다.

설사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부분적으로만 인정하거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같은 이중적 태도야말로

문제를 더 크게 키우는 대표적 오류임을 알아야 한다.

한 예로 알코올 중독자들을 보면

놀랍게도 중독자의 다수는 중독 행위를 문제라고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더라도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예를 들면 "나는 날마다 술을 마시지는 않아,

안 마시려고 하면 며칠이고 안 마시니까 중독이 아니야!"

라는 식으로 부정한다.

그리고 수차례 재발하여 재입원을 하면서도

"내가 술을 많이 마시는 건 인정해,

 하지만 남자가 사회생활 하다보면

술로 스트레스를 풀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실수 한두 번 정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과연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부정, 축소,

합리화 등을 하면서

중독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자신의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알코올 중독 회복의 진정한 출발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게으름의 경우는 어떨가?

우리는 흔히 할 일을 다 하지 못했을 때

'난 게을러!' 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상투적 표현일 뿐이고, 사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왜냐하면 아무 일도 하지않고 뒹굴뒹굴 놀았던 것이 아니라

덜 중요한 일이지만 나름대로

무언가를 하느라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은 늘 우리를

덜 부끄럽게 만들고 덜 불안하게 만든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유를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니면서

자신의 게으름을 '재충전을 위한 휴식' 이라고 미화한다.

하지만 '맹목적 부지런함'과 '회피성 시간 공백'

결국 모두 게으름이다.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언젠가는 벽에 부딪치고 만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방향없는 노력과 초점없는 과제가

얼마나 사람을 소진시키고 삶을 빛 바라게 하는지 깨닫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게으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각할 수 있을까?

 

첫번째 방법은

미래에 서서 오늘을 바라봐야 한다!

게으른 사람들은 과도한 미래의 불안때문에

지금 당장 주어진 일조차 못하는 사람이거나

반대로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현재의 편안함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언뜻 상반되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비슷해진다.

이들은 점점 미래를 떠올리지 않는다. 괴롭기 때문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고 답답해지니까

자꾸 그러한 생각마저도 미뤄버리고 피해버린다.

이를 적극 도와주는 것이 바로 중독이다.

그러므로 게으른 삶 에는 '미래라는 시제가 배제되어 있기 쉽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을 동물과 구분짓는 본질적 특징은

'자의식' 과 '미래인식'에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외면해도 미래를 마냥 잊고 살 수 없다.

그 계기는 때로는 아주 우연처럼 나타날 때도 있다.

한 알코올 중독자는 어느 날 딸아이의 눈망울을 보면서

거짓말처럼 '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각성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것은 우연일까? 왜 하필 그 시간에 그러한 생각이 들었을까?

그런 각성의 순간이 있기까지 그럴 수밖에 없는

여러 사건과 마음의 흐름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어느날 딸아이의 눈망울로 옮겨가

하나의 계기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이렇듯 변화의 계기는 멀리 있거나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변화하기 위해 불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만도 아니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는 일상에 숨겨진 변화의 계기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우리는 얼마든지 미래를 떠올리며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미래에 서서 오늘을 바라보는' 시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의 삶 속에 미래를 보다 깊숙이 초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유언장을 미리 써보거나

자신의 장례식을 스스로 기획해보거나

미래의 시점에 미리가서 자서전을 써보는 것이 좋다.

사람은 죽음에 좀더 근접한 경험을 할수록

변화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죽음과 가까워지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가 명백해진다.

현실에 미래가 공존하게 되면

평범한 일상도 변화의 계기로 넘실거리게 된다.

산에 올라가서 세상을 바라보면

사소한 번민이 씻겨나가 듯 자신의 삶을 미래의 시점이나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경우 문제가 더욱 또렷해지고

그만큼 해결책도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두번째 방법은

게으름에 대한 책임과 폐해를 '전면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일까? 싶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게으름의 폐해에 대해

무지하거나 축소하며 심지어는 게으름을 찬미하기도 한다.

그에 비하여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습관적인 자기합리화와 도피적인 자기비난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책임과 노력이 부족했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회복하는 사람들은 중독으로 인한 삶의 폐해를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받아들일 줄 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애써 축소하려 하지 않는다.

중독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관계폐해를

다각적으로 살핌으로써 중독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시켰는지 확인한다.

그들은 중독으로 인해 달라져버린 인생을 되돌아볼 줄 알고,

자신이 변화하지 않을 때 미래가 얼마나 비참할지를 예상하며,

중독에서 벗어난 삶이 얼마나 근사할지 상상하고 즐길 줄 안다.

그들은 더 이상 중독이나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외부에서 찾느라 더 큰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고 지나치게 비난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게으름도 마찬가지이다.

게으름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게으름이 자신의 인생에 끼친 폐해를

전면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게으를 수밖에 없었던 외부적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일차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코 쉽지 않고 아픈 일일지라도 말이다.

 

 

세번째 방법은

내 안에 큰 '나'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자신의 게으름을 인정한다. 이것은 무슨 말일까?

만일 어떤 시험 문제에 답이 없다면

그것을 문제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답이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사람들은 문제를 인정한다.

게으름의 문제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무의식적 두려움을 갖고 있다.

자신의 게으른 모습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만이

게으름의 폐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갖는 법이다.

그러나 게으름이 오래될수록 우리는 점점

'나는 게으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어!'가 아니라

'나는 (원래)게으른 사람이야!'라고 규정짓게 된다.

자신의 정체와 본질 자체가 게으르다고 믿고 있다.

그렇게되면 우리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야!' 라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사랑을 향해 나아갈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제는 인정하되 게으름이라는 문제와

자신의 존재를 구분짓는 것이 필요하다.

게으른 삶의 모습이 자신의 본질이 아니며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를 지탱시켜줄 수 있는 것은 희망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보이면 우리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버틸 수 있는 힘든 상황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삶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가능성이다.

가능성이 있기에 삶은 아름답다.

만일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보이는 것이 당신의 전부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

"아닙니다! 내 안에는 더 큰 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 할 수 없다면 당신은 결코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게으름이라는 나무늘보 같은 녀석을

떨쳐낼 수 있다.

본인을 믿고, 오늘부터는 변화해 나가볼까?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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